우리 회사에 처음으로 인사평가 제도가 도입되었고, 얼마 전 나는 피평가자로서 첫 평가 면담을 진행했다. 평가자는 면담 중 "이 정도면 충분히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평가 결과나 면담 자체에 특별한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대화를 계기로 나는 "과연 인사평가에서의 '객관성'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객관적 평가의 정의와 그 중요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본 글은 이러한 고민의 과정과 결론을 담고 있다.
학술적으로 접근할 때, 인사평가에서 절대적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로 여겨진다. 이는 평가 행위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인지적, 정서적 판단 과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사평가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과와 행동을 일정한 기준과 프레임워크 안에서 판단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평가자의 주관적 편향과 가치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접근할 때, 평가의 상당 부분이 주관적 판단을 내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주관성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즉,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인사평가의 효과적 운영을 위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인사평가 제도의 설계 자체에서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이미 개입되어 있다. 평가 제도는 기본적으로 특정한 기준과 범주를 정해 평가 대상을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보편적이기보다는 평가자나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문화적 특성, 조직의 목표와 같은 주관적 요인들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특정 행동 양식을 우선시하는 조직은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행동 양식을 더 높이 평가하고, 그와 다른 성향의 구성원에게 불리한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 즉, 프레임워크가 설정되는 순간부터 이미 평가의 객관성은 부분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둘째, 인사평가에서 사용되는 정보의 완전성과 객관성에도 명확한 한계가 있다. 사람의 기억과 인지능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평가자는 피평가자의 모든 성과와 행위를 정확히 기억하거나 기록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최근의 강렬한 사건이나 인상적인 사례들이 평가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보의 선택적 수용과 인지적 편향 또한 이러한 현상을 강화한다. 평가자는 자신의 기존 가치관이나 선호도와 일치하는 정보를 과대평가하거나, 반대되는 정보는 간과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이는 평가의 객관성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셋째, 동일한 정보를 두고도 평가자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인간의 정보 해석은 개인의 경험, 가치관, 정서적 상태 등에 따라 상당히 가변적이다. 이로 인해 제도적으로 마련된 평가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있더라도, 이를 적용하는 평가자의 개인적 성향과 판단 방식에 따라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다양성은 법적 판단에서도 자주 관찰되는 현상으로, 법규와 판례가 명확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나 판사의 개인적 견해가 판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상대적으로 덜 체계화된 인사평가의 경우 이러한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넷째, AI 기반 평가 도구의 도입은 얼핏 보면 데이터에 근거한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더 은밀한 방식으로 주관성이 작동하게 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학습 데이터의 범위와 특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으며, 이는 종종 인간 평가자의 주관성보다 더 식별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AI 기반 평가가 도입되더라도 객관성이 완벽히 보장되기보다는 주관성이 더욱 교묘히 숨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관적 요소는 인사평가의 필연적 결함이므로 방치해야 하는가? 아니다. 인사평가의 근본 목적은 조직 구성원의 업무 몰입과 생산성을 높이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다. 평가의 객관성은 구성원들이 평가 결과를 공정하게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도구지만, 그것 자체가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지나치게 객관성을 강조할 경우 오히려 평가의 유연성과 현실적 적합성을 저해하고, 구성원 간의 관계와 신뢰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인사평가 제도는 객관성과 주관성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평가의 본래 목적인 구성원의 성장과 조직 생산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대부분의 나와 같은 입장의 피평가자들에게 조언하자면, 평가 과정에서 완벽한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기대하는 것은 실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평가자와 피평가자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과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평가에 대해서도 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인사평가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로 평가자와 소통하여 인식의 차이를 줄이고 서로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가 평가 과정과 그 이후 업무 수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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