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친구 한명이 올린 트윗이다. 오타는 후에 본인이 정정해서, 해석하자면,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이렇게, 닿았을 때에 이렇게도 감동을 전해온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믿는 신이란 이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마 무언가에 감동을 받아 적은 것 같긴 한데, 나는 이 트윗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믿고있는 신 그것은 아마 그리스도교를 말하는 것일 터인데(인류의 1/3은 기독교신자), 기독교의 신 하나님 또는 하느님(야훼)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신이란 것을 나는 못믿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의 숨겨진 의미는 '나는 나를 믿기때문에 내 자신이 그렇다고 하지않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즉 내 감각이 의심하고 있으므로 신은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로 바꿔말할 수 있다. 이것은 또 데카르트의 논리처럼(데카르트는 오히려 절대적인 신을 정의했지만) 의심하는 것은 불완전 하기때문에, 불완전한 것은 신일 수 없다. 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의심하지 않는, 내 자신은 내가 사고를 함으로서 존재가 증명이 되기때문에 나 자신의 존재만큼은 불완전하지 않다는 반증이 된다. 이를 강하게 압축해서 말하자면 '나는 나를 믿는다. 내 감각은 신을 느낄 수 없다. 고로 신을 믿을 수 없다.' 이렇게 축약이 가능하다고 본다. 어떻게해도 느껴지지않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기 때문에 나는 이 주장을 합리적이라고 본다. 절대로 무신론자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위 트윗에서는 느껴지기때문에 신을 생각한다. 즉, 자신에게 어떤 감동을 전해주는 무언간은 신일지도 모른다 라는 명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느껴지지 않기때문에 신을 부정하는 반면, 이 친구는 신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하며 가끔 느껴지기때문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격이다. 잘못된 것은 다음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친구는 무신론자가 아니거나, 이 친구가 말하는 신은 내가 생각했던 신과 달랐거나. 전자의 경우에는 신을 느낄 수 있는(착각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축복받은 존재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김빠지는 소리지만 내가 오버한 것 뿐이라는 거겠지.